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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289화 일선동조론의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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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삼국유사TV Date21-12-17 00:00 Hit50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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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또는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이란 무엇인가. 이 주장은 야마토(大和) 겨레와 우리 겨레가 같은 조상에서 비롯했다는 논리다. 흔히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으로도 이른다. 비유하자면 일본은 형이고 조선은 동생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제가 조선을 상대로 하여 저지른 식민지 강탈과 동화,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역사문화를 깔아뭉개려는 식민사관의 논리적인 꼼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다 하는 국내의 식민사학들도 앵무새처럼 끼어들어 동조 내지는 한 술 더 떴다는 주장도 있다.
19세기 랑케(L.Lanke)를 중심으로 하는 실증사학이 유럽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뒤 호시노 히사시(星野恒)가 실증사학을 악용하여 일선동조론을 강변하기에 이르렀다. 1890년 호시노는 실증주의의 관점에서 일본의 천황가의 선조가 한반도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온 신라 왕이라고 풀이하였다.
7세 중엽에 신라가 등을 돌려 반란을 일으킨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촌강의 싸움에서 백제와 왜의 군대를 물리친다. 이로 하여 일본은 덴지(天智) 천황 때에 완전히 반도를 잃게 된다. 호시노 히사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분개탄석(憤慨歎惜)라고 발을 구르며 한탄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임진왜란을 맞아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조선 정벌이야말로 당연한 갚음이라고 강변을 했다. 천황가야말로 한반도의 통치자임은 물론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본래 한 나라였다.
언어학 분야에서는 어떠한가. 일선동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근대 초기 조선어 연구자로서 하나인 가나자와 쇼사부로(金沢庄三郎)의 저서인 ‘일한양언어동계론’에서
'조선의 언어는 대일본제국의 언어와 같은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서 일본어의 한 갈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류구(流球) 방언과 일본어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강변하였다. 이러한 학설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가나자와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란 제목이 굳어진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일선동조론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찬탈과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정책의 정당화에 원용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만주·몽골을 같은 민족으로 삼아 이른바 대아시아주의(大亞細亞主義)라 하여 일제의 만주,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적 근거로 삼았다.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의 계통적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연구로 보아 정설이다. 언어계통론으로 보면, 람스테트(G.Ramstedt)의 동시분열설이나 포페(N.Poppe)의 조기분열설에 따라서 보더라도 일본어는 한국어와의 같은 계통임을 단언하기란 어렵다. 다만 차용어라든가 어순의 면에서 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이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많은 교류에 따른 영향 관계로 봄이 온당하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아주 이른 시기에 고아시아 족의 공통 조어 시기에 일본어가 분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은 있다. 한국어족의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열도를 정복하고, 나머지는 한국어족에 동화되면서 현재의 일본어가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은 역사고고학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덤 양식이었다. 고대 일본의 무덤 양식의 얼굴이 이른바 전방후원군(前方後圓墳)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한반도의 남서부와 남동부의 원형분과 서남부의 방형분이 합쳐지면서 생겨난 고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분묘가 일본으로 건너간 마한과 변진한의 도래인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다. 백제 시기 동성왕과 무령왕 때 일본에서 함께 들어온 왜계 장수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경상도 고성의 송학동 1호고분군 또한 전방후원분임이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삼국유사 고조선 부분의 환웅천강설이 영향을 주어 태양신 숭배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의 건국 설화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조선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함이 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던 해였고, 단군세기에 47분의 단군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로써 일선동조론의 허구성을 확연하게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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